이승만은 급거 상경하여 남한 단정수립문제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정계의 전면에 또 다시 나타났다. 이승만의 단정수립운동은 한민당 등 일부우익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집요하게 추진하여 <하지>와도 정면으로 충동되었음은 물론 대소정책을 수행하는 미국무성에도 못마땅한 존재로 인
미국은 애치슨 라인 사건을 고의적으로 일으킨 것인가? 당시 미국은 한반도내의 첩보기관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보고 받았지만 이를 무시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말장난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애치슨 라인의 경우도 말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그 의혹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2. 이승만대통령의
미국은 타이완의 공산화와 비민주적인 타이완 정권에 대한 방위도 반대하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목표가 경제재건과 체제안정이었기 때문에 이승만대통령의 북진 정책을 경계하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은 북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극적인 대응
미국이 대만으로 쫒겨간 장졔스와 남한의 이승만 정권 모두 국민들로부터의 이반이 가속화됨으로써 정권의 기반이 매우 취약해 지고 이로 인해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는 전초기지가 위태롭게 될 것을 우려했으며, 오히려 이들을 제거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던 점에서 잘 나타난다.
그럼 미
미국은 NSC68을 통해 자신들의 전략을 정식화ㅡ비록 대통령의 서명은 없지만ㅡ한다. NSC68은 NSC48에 비해 좀 더 적극적인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세계도처에서 공산주의를 ‘봉쇄’하고 직접적으로 소비에트의 내부 붕괴를 유도하는 ‘반격’의 전략을 표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