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총동맹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이 됨.
1950년 6.25동란 중 낙동강 전선까지 종군. 12월 국방군의 북진을 따라 문화계 인사들이 이태준을 구출하려 했으나 실패, 이태준이 평양에서 만난 애인과 그 자식만 남하시킴.
1952년 남로당과 함께 숙청될 위기
문학가동맹은 내부 알력으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 결국 프롤레타리아가 조선 혁명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프로문맹’ 문인들이 대거 월북하는 사태로 불거지면서 일시적 봉합은 깨지고 만다.
Ⅲ. 이태준의 작품세계
1. 이태준문학의 시기구분
상허 이태준은 신경향파 문학
작품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 시기가 이태준 고유의 ‘스타일’을 확립해가는 습작기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의 맹아적 단계로서 섬세한 고찰이 요망된다. 다양한 형식실험이나 정제되지 않은 인식의 표출과정에서 오히려 이태준문학관
문학파를 배경으로해서 다루고 있으나 그의 학문과 문학이 확고한 개성을 드러낸 것은 《문장》시대의 일이다. 이병기가 문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배경에는 그와 이태준 사이의 돈독한 유대가 깔려 있었다.
이태준의 수필에 등장하는 이병기는 언제나 이병기의 고풍스런 심미주의를 북돋아주는
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1912년 겨울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이태준의 3남매는 천애의 고아가 된다. 그리하여 이들 3남매는 고향인 철원군 용담의 친척집으로 옮겨 간다. 용담의 오촌댁에 묵게 된 그는 사립 봉명학교에 들어가 1918년 우등으로 졸업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간이 농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