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모순 ․ 계급모순을 해결할 주체로서는 미흡하였다. 일제시기의 경우, 조선인 자본가 중 예속자본가를 제외한 자들만이 민중이 중심이 된 민족해방운동 차원에서 견인되어야 할 존재로 고려되었다. 이승렬, 「일제시기민족자본가 논쟁」, 『역사비평』(계간 9호), 1990 여름.
식민지근대화론
.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포된 신흥사회과학에 빠져든 다음 특히 계급주의를 지향한 『씨뿌리는 사람』을 탐닉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정신적인 동조자를 찾아 나서서 먼저 배재고보의 동창생인 박영희, 이상화, 안석주 및 상기 네 사람을 더 가담시켜서 구성원들의 이름 두문자를 딴 PASKYULA를 발족시
민족적 의미에서만 근대사를 바라보게 됨으로써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미비하게 다루게 되고 이러한 전개 속에서 현대사 이후에도 저항과 민족의 역사 서술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② ‘약탈과 수탈’만 존재하는 경제
식민지시기에 경제적인 측면에 대한 서술이 반침략 운동의 근
해방이라는 세 분기점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1870년에서 1910년까지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서 근대국가를 수립하려는 시기였고, 1910년에서 1945년은 민족해방투쟁기였으며, 1945년 이후에는 민족 분단시대였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목표를 추출해 본다면, 그것은 바로 근대
시기에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 서문에서 우리 사회경제사 전체에 대한 구상을 밝히는 가운데 ‘아시아 봉건국가의 붕괴과정과 자본주의 맹아형태’ 및 ‘이데올로기 발전의 총과정’ 등을 연구 과제로 들고 ‘학문의 발전은 … 무엇보다도 사회경제의 역사적 발전과 내면적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