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송서, 칠지도 등을 들고 있다. 일본서기, 송서, 칠지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광개토대왕 비문이라면 우리가 현지 조사를 통한 연구를 하면서 진실성을 밝힐 수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도출해 낼 수 있는 결론은 임나일본부는 결국 허구라는 것이다. 그들보다 오히려
1. 기년문제의 제기
한국고대사의 연구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아마도 자료의 부족일 것이다. 이에 현존하는 사료나마 엄밀히 검토하여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은 연구의 기본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다루는 시기가 올라갈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기사에
1400년의 침묵을 깨고 비석하나가 새롭게 발견됐다.
그것은 바로 광개토대왕비였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문과 일본서기를 근거로 4세기부터 6세기까지 200년 간 고대 일본이 고대 한국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한일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시작이었다.
광대토대왕비 재발견
Ⅰ. 서론
죠몬시대나 야요이시대라는 것은 일본의 고대 역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원시시대에서 문명이 발생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시시대의 문화는 주로 토기로 구분하는데, 토기의 제작은 인간이 처음으로 물질의 화학변화를 알게 되고 그것을 이용한 것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는 연개소문이 ‘이리가수미’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때의 ‘이리’도 ‘연’을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중 략>
“일본서기” 는 태양왕이 죽은 직후 연개소문이 난을 일으켰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이어서 연개소문이 정변에 성공한 뒤 아우 왕자, 즉 태양왕의 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