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이 순시차 평양성에 갔더니 신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대왕에게 고하기를 “왜인이 우리 국경에 가득히 들어와서 城池를 파괴하고 있으니 구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신라를 구원하기 위한 마치 종주국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정한다는 것이다. 이엉 영락 10년인 400년에 5만의 대
임금) 의 아들 장수왕이 광개토왕 사후 3년간의 상을 지내고 갑인년 9월 29일 을유에 아버지의 망해를 능묘에 매장했고 그 옆에 세운 비이다. 이 비문 속 광개토왕의 정식 시호는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광개토왕’이란 이름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이는 왕명이
본이 그러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할 뿐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학계도 이제는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들은 임나일본부의 근거로서 광개토대왕 비문, 일본서기, 송서, 칠지도 등을 들고 있다. 일본서기, 송서, 칠지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광개토대
임나국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임나국을 중심으로 서부에는 백제계의 분국이, 동북쪽에는 신라계의 분국이, 동쪽에는 고구려의 분국이 위치하였고, 동쪽으로 대화정권(倭)이 위치하고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백제군사령부설 - 천관우는 가야사의 복원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서기에 대한 비판적 연구
본의 역사 왜곡은 비단 독도 문제 한 가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국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고대 한반도 정복역사를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토록 막무가네로 우기는 일본의 아전인수격 해석은 21세기 또 다른 침략인 것이다. 이러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