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의 침묵을 깨고 비석하나가 새롭게 발견됐다.
그것은 바로 광개토대왕비였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문과 일본서기를 근거로 4세기부터 6세기까지 200년 간 고대 일본이 고대 한국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한일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시작이었다.
광대토대왕비 재발견
3. 일본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
(1) 일본서기 (‘日本’이라는 명칭사용에 대해)
<일본서기> 에서는 왜(倭)가 5세기 경 가야 땅에 직할 식민지인 ‘임나일본부’ 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황당무계한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는 일본 사학자들조차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 오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은 사실로 입증된다.
그러나 임나와 가라가 모두 가야를 가리키는 것인데 왜 중복되어 나타나는지, 또 이미 예전에 멸망한 진한과 마한이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왕이 받은 관작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허구적인 명예직
임나일본부설이 문제가 되는 이유와 사료해석의 유의점
임나일본부설의 주근거사료인 《일본서기》는 8세기 초에 일본왕가를 미화하기 위해 편찬된 책으로, 원사료 편찬 과정에서 상당한 조작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며, 5세기 이전의 기록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Ⅱ. 임나일본부에
것이다.
4. 양국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양국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일본에게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사건의 원인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 그 예로 임진왜란이나 강화도 사건, 한국강제병합 등에 대한 설명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