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하라다 교수는 병합조약에 앞서 일본이 외교권을 장악해 한국을 보호국으로 한 일한 보호 조약(1905년)에 대해서, 황제(국왕)의 일기 등 한국 측 자료의 「일성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을 분석해, 고종황제는 조약에 찬성해 비판적이었던 장관들의 의견을 각하하고 있었던 사실을 밝혔다.
* 모내기법 이외에 농업 생산량을 늘일 수 있었던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 조선 후기 농업의 변화 모습 알아보기
* 일성록과 경세유표에 나타난 농사법과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알아봅시다.
* 어떤 농사법인가?
*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였나?
*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성록(日省錄)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이 각각등재되었다.
훈민정음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으로 2권 2책이다. 서울특별시성북구성북동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
일성록(日省綠)에 공예라는 용어가 언급되고 있다.
“공예의 교묘함과 상판의 번성함과 의약의 기술은 그 정수를 배우고 그 묘리를 취한 즉 국민이 그 재지를 모두 습득하여 모든 기술을 종사케 한다면 굳이 재예희세지인만을 광구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이 공예라는 용어는 조선에서 일본으로부터
시작되면 이미 준비된 자료 외에 다른 자료를 수집했다. 각 관청의 업무일지라고 할 수 있는 등록류, 「승정원일기」, 「경연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 조보(朝報) 」 등의 관찬자료와 양반 개인의 문집, 야사(野史)를 비롯하여 민간에 떠도는 구전 등의 민간자료까지 모두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