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화(1908-1953) 역사와 격랑속에 침몰한 혁명시인1)
서울 낙산밑 소시민 가정에서 1908년 10월 13일에 태어남. 일제 식민지하에서 프로진영의 대표적 시인이자 비평가이면서 선구적 문학사가로서 뚜렷한 자취를 남김. 동시에 진보적 문학가 단체였던 카프(KAPF)2)의 중앙위원회 서기장, 조선문학가동맹
(1)약전
자는 덕회(德晦), 호는 여헌(旅軒)이다.
고려 상장군 금용(金用)의 후손이며 덕녕부윤(德寧府尹) 안세(安世)의 8대손으로 증 이조판서 열의 아들로 명종 9년(1554)에 인동 남산에서 태어났다.
7세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 때 부친을 잃고 11세때 학자인 신당 정붕의 아들 정각(鄭慤)이 보고 "
시에서 어떠한 일관된 사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이는 그가 중시한 감각의 형상화나 언어의 절제미가 벗어나기 어려운 취약한 부분일 수 있다.
정지용의 행방이 묘연해진 한국전쟁 전후를 그가 죽은 시점으로 본다면, 그 이후 이루어진 그에 대한 연구도 이전과 같이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
연구에서는 이러한 임화의 낭만주의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 문학의 논리에 수록 된 임화의 시론 중 <낭만적 정신의 현실적 구조> 와 <위대한 낭만적 정신> 등을 분석하였다. 이 시론들을 연구하여 임화가 추구하였던 낭만적 정신, 즉, 임화의 낭만주의가 무엇인지를 도출해 내었으며, 또한 이 임
Ⅰ. 시인 연구 - 이상(李箱 1910 ~ 1937) 오세영(1998), 《한국 현대시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 출판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서울 출생이다. 1912년 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집에서 장손으로 성장했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를 지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