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만일 그렇다면 그 아주 작은 물질이란 과연 무엇인지, 등의 문제. 바로 이런 생각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기 시작했고, 각자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쳤다. 이들을 우리는 오늘날 자연철학자라고 부르고, 이들의 다양한 주장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과학은 이 정도까지 발전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대해 많이 이해하면 할수록 자신을 억압하는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버마스는 독일의 고전철학자들과는 달리 비판의 근거를 선험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찾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하버마스는 일련의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비판이성이 사회 속에 자리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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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수학한 곳이기도 하였다. 또한 1920년대에 빈 대학에서는 철학교수였던 M.슐리크를 중심으로 한 비엔나 학단이라고 하는 논리실증주의와 종래의 사변적인 철학을 반대하고 과학적인 철학을 주장하는 철학자 그룹이 나타났는데 포퍼는 그러한 시기에 학창시절의 대부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그리스 도시국가의 사람들이었고, 이들에게 개인은 도시와 분리하여 생각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도시국가가 더 거대한 범세계적 전체로 통합이 됨으로써, 스토아주의의 관점처럼 개인주의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이라는 이상을 지닌 세계주의도 등장하게 되는
자연현상을 그대로 보지 않고 하나의 학문체계나 학파에 억지로 맞춰서 살피려 할 때 생기는 폐단이다. 베이컨은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이 네 가지 우상 모두의 폐단에 젖어 있으며, 연금술과 마술은 동굴의 우상, 그리고 원자론자들의 주장은 주로 극장의 우상에 물들었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