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을 향유층으로 끌어 들였다. 잡가의 향유층도 도시적 직업을 가지고 도시에 사는 대중들이었다. 이들은 조선 후기 상공업이 번창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고 상품의 생산 및 수공업을 담당하였다. 또한 임금노동 등에 의한 새로운 생활 방식을 도모하고, 물질적 재화를 획득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문화는 공간상의 확장뿐만 아니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세대간에 유대감을 고취시키는 등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특히 아리랑은 한민족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음악으로서 세대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
조선 후기는 신분제사회가 존재기반을 잃으면서 서민문화가 전면적으로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경제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사상의 유입 등은 서민의식의 성장을 가져왔고 서민문화의 전성기를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잡가는 서민문화가 활성화되어 가던 19세기에 신분적으로는 하층민에 속
역사만큼이나 그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우리의 특성에 가장 잘 맞을 것이다. 현재 많이 대두되고 있는 세계화의 문제도 신경 써야 하겠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바로 알고 우리의 것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런 기초적인 작업들이 바로 세계화가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하
이글에서는 19세기 후반 대중가요로 부상하는 잡가를 우리 대중가요사의 효시적 갈래로 상정하여 그것의 변모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이후 신민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과 함께 외래적 노래 양식으로 대중가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유행창가와 이의 지속 현상으로 트로트가 정착하는 과정을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