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에 이르러서 전기는 문인들이 즐겨 쓰게 된다. 따라서 남희가 윤창이나 합창을 하고 자유로운 양식으로 극을 표현한 것에 반해, 명대에는 문인 취향에 맞게 공연 양식이나 작품을 표현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공연에 문인 취향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극을 표현할 때 부드러운 음악을 사용
전기 작가는 제재를 선택하고 꾸밀 때 항상 변화무쌍․복잡다단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생동적인 극장효과를 얻어, 많은 우수한 작품을 써냈다. 그러나 어떤 전기작품은 적지 않게 현실 생활과 동떨어져 있으며, 고의로 기이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반현실주의적 경향이 나타남도 간과해서
(魏良甫)가 남, 북곡의 장점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곤곡을 창출하였다.
남희의 곡조는 서위(徐渭)의 <남사서록>에 기록된 것처럼 통일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율이나 악기도 서로 달랐다. 명대 중엽 전후에 유행된 희곡 창강들 가운데 영향이 비교적 큰 것은 익양강, 여요강, 해염강이 있다.
남희(南戱)의 곡조, 성강(聲腔)에 붙여져 상연되었으며, 각각의 곡조는 그 지역의 언어 혹의 민족적 특색을 담고 있었다. 이들 곡조는 북곡(北曲)의 영향을 받은 남곡(南曲)이 대부분으로 익양강(弋陽腔), 여요강(餘姚腔), 해염강(海鹽腔)이 널리 유행하였고 , 소주(蘇州)일대에서는 곤산강(崑山腔)이
남희의 곡조는 서위(徐渭)의 <남사서록>에 기록된 것처럼 통일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율이나 악기도 서로 달랐다. 명대 중엽 전후에 유행된 희곡 창강들 가운데 영향이 비교적 큰 것은 익양강, 여요강, 해염강이 있다.
☺ 익양강: 익강(弋腔)이라고도 하며 원나라 때 강서 익양(弋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