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하고 특징을 부여하면서 존비(尊卑), 귀천(貴賤), 강유(剛柔), 동정(動靜)의 가치 개념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유교적 여성관은 유교경전중 하나인 「주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하늘과 땅의 높고 낮은 공간적인 위치가 귀하고 천하다는 사회적인 존비개념으로 변화된 것을 보여준다.
잔재가 남아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 이전의 여성관부터 유학시대의 전통적 여성관까지 유학에 영향을 준 여성관과 실제로 그 영향력이 구현된 사회를 살펴보고, 과연 유학이란 것이 남녀 차별적인 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시대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는 가정과 대비된 사회의 개념에만 한정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 이는 전 근대의 사회 개념은 자본주의사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시대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가정 내에서의 역할과 상호 연관되어 작용하고 있어 포괄적인 사회개념 안에서 생각하여야만 한
시대에는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내외의 관습으로 남녀의 생활공간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이는 정식으로 혼인한 부부 간의 사이에도 적용되었다.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조선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전 지식으로는 이전 고려 시대와 같은 자유연애가 존재하기 힘든 사회였다. 자유연애
Ⅰ. 서론
유교(儒敎)는 중국 춘추시대 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난세를 구하는 것은 법률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는 인(仁)이라고 공자 [孔子, BC 551~BC 479]
는 주장하였다.
공자가 주장한 유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차별과 권위주의의 뿌리라 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사회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