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복수론인 북벌론과 그에 상응하는 대명의리론인 존주론은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다. 이에 따라 현실론적 의식을 앞세운 소론은 눈앞의 위협적 존재인 청나라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멸망한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자는 노론계의 주장과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소론도 중화문화 수호 논리인 존주
있으며 이 순간의 설렘과 발걸음이 ‘가기(佳氣) 총총야라’에서 확인된다. 비록 한 수밖에 전하지 않지만 정철이 연행 도중 촉발된 감회를 시조로 표출하기도 했음을 보여주고 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작품이다. 이처럼 조선 초기의 외국 체험 문학은 감상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박지원이다. 당시 박제가, 홍대용 등과 함께 청조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을 발표, 양반계층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
조선후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고 극복하려 한 대부분 사람들의 탈출구 중의 하나였다. 그것이 몰고 온 평등사상, 보민 사상 등은 억압받은 민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킨다. 서학, 즉 천주교의 도입은 한국사에서 귀중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이유는 서학을 통해 한국 지식인들이 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