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선후기불교와 사찰계의 성립 배경
조선시대의 배불은 건국 직후부터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개창자 태조는 護佛의 입장에서 고려불교를 계승하는 조처를 취하였으나, 태종의 즉위와 함께 본격적인 배불이 전개되었다. 이후 16세기 중반 중종 대까지 계속된 배불의 결과 성내의 승려는 격감하고
조선 초기의 억불정책에 대응한 불교계의 동향과 민간신앙의 흐름을 알아봄으로써 조선후기의 사상적 측면에서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Ⅱ. 조선후기의 불교
1) 조선전기의 억불정책
조선왕조 개창 직후 건국 주도 세력들은 성리학적인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열의에 불탄 반면, 고려사
조선 왕조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대응책을 모색했고, 결국 양란 때 호국불교를 내세우면서 조선 왕조에 큰 획을 긋는다. 또한 민간신앙은 혼란한 사회를 틈타 백성들의 삶 속을 파고들었으며, 후에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조선 왕조에 반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금부터 조선후기불교계
Ⅰ. 삼국시대의 불교
한국사가 전개되면서 수많은 사상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어떤 사상은 아류로 머물기도 했지만 어떤 사상은 주체적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상을 다루면서, 예를 들어 불교의 경우 불교 전래라는 말은 조심해서 쓸 필요가 있다. 불교 수용 이전의 불교 전
불교
일반적으로 유학자들은 도교에 대해 허황되고 사람을 미혹시키는 요사한 종교라 하여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 초기에 도교적 성격을 띤 소설이 많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굳이 꼽자면 김시습이 [금오신화]의 한 작품으로 지은 [만복사저포기]가 도교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