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이 폐지된다. 그러자 궁중의 광대들은 향촌광대나 유랑광대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예를 다듬어 흥행에 주력하였고 놀이패의 유지비는 지방 유지들의 기부에 의존하였다. 이처럼 조선후기 궁중광대와 지방 이속들의 결탁뿐만 아니라 향촌 광대와 이속들의 결탁과 협조로 탈놀이가
이루어졌다. 소학지희는 정치적인 배려에 의해 정치 사회적 명분을 유지하였지만 천민배우가 연행을 담당하였기에 그들의 신분에 기반한 이면적인 주제의식으로서, 부패하고 부정한 상층 관료에 대한 비판의식이 존재하였다. 비판과 풍자의 소학지희는 조선후기 전통극과 그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양상, 마지막으로 시조의 변이로 인한 사설시조의 등장 과정의 네 가지 부분에 초점을 두어 심화적인 논의를 진행하였다.
Ⅱ. 전문 요약
9.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제1기 조선후기
9.1. 민족 수난에 대응한 문학
9.1.1. 시대변화의 계기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후기는 중세에서
탈춤은 우리 나라의 민속문화 속에서 체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극양식이다. 모든 문화양식이 그러하듯 탈춤 역시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상황의 반영 물이다. 탈춤의 형성기를 조선후기로 추정한다면 탈춤에는 조선후기의 제도, 문화의 여러 모습들이 담겨있다.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신분질서의 붕괴
조선에서 시작되어 부족 국가 시대를 지나 삼국을 정립하였고 나중에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을 통일하였다.
주요 전개양상으로는 제천의식에서 행해진 집단가무에서 발생하였다. 이 집단가무 형태의 원시 종합 예술에서 문학이 분화되고 다시 이것이 신화, 전설 등의 설화 문학과 개인 서정 가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