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이다. 그림의 앞부분에 있는 안평대군이 직접 쓴 서문(序文)에는 세종 29년 4월 20일 한밤중에 박팽년을 비롯한 당시의 유명한 신하들과 함께 꿈속에서 도원을 유람한 내용을 자세히 적고 그 꿈을 줄거리로 하여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고
그림을 통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연초(年初)에 집안에 붙였던 세화(歲畵)를 비롯하여 요지연도(瑤池宴圖), 문자도, 책거리, 화조도 같은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 그림들이 왕공 사대부가에서부터 일반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발달해갔다. 한양의 광통교(현재 광교 부근)에서는 이들의
<조선 전기의 미술>
• 사상적 배경
(출처- 조선시대 산수화, 아름다운 필묵의 정신사/고연희)
여말, 사대부는 지방의 뿌리깊은 토착세력(향리)으로서 당시 농업 생산력 발전에 힘입어 중소지주로 성장, 사회 경제적 지위를 강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조선 건국 이후 확고한 사회 중심 세력으로 성
1. 조선후기의 시대적 배경
조선 후기는 숙종 연간부터 영ㆍ정조를 거쳐 순조 연간(1820년경)에 이르는 약 120년간으로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하였다. 한국 사회에 있어 서양문물의 도입은 서세동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식 조형방법의 도입도 서세동점의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