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가 근대화의 길을 비로소 찾게된 것임과 동시에 아시아 후진국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식민지화의 위험에 직면하게된 비극의 시작이었다. 고종 18년에는 영선사, 신사유람단파견, 1884년 수구세력을 누르려다 실패한 갑신정변 등 우리 민족 자체로서의 근대화 운동도 없지는 않았으나 밖으로
세기에 이르기까지 대국과 소국 간의 상하 관계를 규정한‘禮’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서구 근대에 정착된 국제법 관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조선 시대의 국제 관계는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그 모습이 판이하게 변모하게 된다. 조선은 그간에 문화적 후
권세를 잡고 전권(專權)을 휘두르는 부정적 정치형태인 홍국영(洪國榮) 이후의 조선후기 세도정치를 지칭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심화되면서 그의 중압을 받아 일반 국민의 사기가 날로 저하되고 동요되기 때문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7 : 서세동점과 문호개방」(2000) 211p~213p
나오기 시작하는 데 실학의 거목인 박지원에 의해 새로운 차원의 한문학이 〈허생전〉·〈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위선을 지적하는 세태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해 내고 있다. 이 장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17세기조선 한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서술하기로 하자.
세기에서 4세기경 마우리아 왕조가 출현하여 인도대륙을 통합하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자, 이를 반영하며 전륜성왕설(轉輪聖王說)이 등장하였다. 전륜성왕은 무력이 아니라 정법에 의해 통치한다는 세계적 정복군주였다. 전륜성왕은 기원전 3세기경에 실존하였던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에 영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