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이전의 가계기록
1. 고대사회의 조상숭배와 가계전승
고대사회에서 등장한 조상신은 여전히 혈연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해주는 구심점으로 작용하였고, 왕실은 이러한 조상신을 모시는 제사를 통하여 그들만의 우월적인 혈연의식을 형성해갔으며, 지배계층으로서 그들 혈통의 신성함과 존엄성
족보나 종중사업에 너무 과열된 처사 때문에 학술의 지보나 지식의 발달이 지연되는 소요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족보제도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는 너무 조상의 명망이나 업적의 자랑에만 치중했던 족보를 혈통과 유전학을 중심으로
족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가문에서 족보를 통하여 가계를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였다. 족보는 단순히 가계의 기록에 끝나지 않고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족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족보가 가지는 역사성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인쇄술의 발달로 족
시조 발상지에 해당하는 향리의 지도, 종사(宗詞)의 약도 등이다. 선조의 화상 같은 것은 별로 없다.
수자 명기(明記)
대개는 족보의 편수를 담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어떤 파보에는 거기에 참여한 다른 파의 유사(有 司)도 기입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명예를 표창하는 동시에 기록의 정확을
족보보다 작은 규모의 족보라 할 수 있다. 주로 한종파별로 정리되며, 각각 세부사항에따라, 형태및 수록 내용이 변할 수 있다.
○만성보
만성보는 조선 초기부터 편찬되었다고 추정되어지며, 15세기에 편찬되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명문가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본관, 지파 정도만 기록되어 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