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상징주의의 선구자 보들레르는 방탕한 생활과 정신적 질환을 시인의 상표처럼 만들어버린 시인이었지만, 상상력만이 아니라, 논리와 분석을 섬김 미술평론가이자, 번역가이기도 했습니다.
<악의꽃>에 대해 말하자면, 그가 죽은 후 82년 만인 1949년,
보들레르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소위‘사악한, '비이성적' '도피적인’'추한'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 속에 놓여 있던 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물론 보들레르에 대한 연구는 철학적, 미학적, 심리학적 차원의 여러 분야를 통해 검토되고 연구되어 왔으며 그에 대한 논문만도
붕괴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을 심각하게 체험하면서 극단의 회의사상, 퇴폐주의, 유미주의, 정신적 무정부 상태 등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 풍조와 정신 현상을 바탕에 깔고서 붕괴된 가치 세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새로운 모럴과 문학 이념을 제시하고자 등장 한 것이 상징주의이다.
보들레르가 규율을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에, 1832년 그를 리옹에 있는 왕립 중학교의 기숙 학생으로 들여보냈다. 학교 생활은 엄격한 군대식 일과에 따라 이루어졌지만, 이곳에서 그는 행복했던 듯하며 몇 개의 상을 타기도 했다. 그는 또한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의 문학적 표현
시를 언어 예술로 자각한 현대시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데서 그렇다. 시문학파가 추구하는 순수시란 어떠한 문학 외적 이념에도 반대하면서 시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경향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문학파의 순수시는 본래적인 의미의 순수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프랑스상징주의에서 비롯된 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