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이식하는 시인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정지용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30년대의 작품에만 한정시키는데서 오는 오류이다. 또한 지금까지 정지용의 시를 연구한 논문들은 형식을 분석하는 데만 치중한 나머지 정지용의 전기적 고찰을 소홀히 하였으며, 이로 인
문학을 지향하는 인간중심의 문학과, 이기영, 임화 등을 비롯하여 김남천, 박노갑, 허준 등의 이데올로기를 선양하는 계급적 민족문학이 양대 지향성을 보이던 한국문학은 6·25로 그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내적 세계, 자아로의 칩거와 인간존재의 의미를 해명하는 경향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 사회는 1960년대에 들어와 전환점을 맞는다.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과 이듬해 일어난 5·16 군사정변은 정치 사회적인 측면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한국문학도 사회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현실 참여의 색깔을 띠기
모더니즘은 현대의 여러 메커니즘을 지성이라는 이름 아래 피상적으로 관찰함으로써 깊이 있게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을 인간의 보편적 경험과 결부시키려는 노력을 오히려 희화화한다. 그래서 지성이 재치와 동일시되고 고통은 기피되어야 할 감정적 누습이 되어버린다.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에서
문학이 범람하던 시기에 유미 주의적 견지에서, 시문학. 동인들과 더불어 순수시 운동을 벌렸다. 그는 만해 한용운 처럼 현상계에 부재한 님을 갈구하는 혁명가이거나 종교시인도 아니며, 당대의 정지용처럼 이국정취에 취향을 보인 모더니즘의 시인도 아니며, 전통적인 리듬의 바탕 위에 인간의 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