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는 안창호가 가석방으로 출옥한 수 그를 방문하겨 지역감정을 화제로 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안창호의 발언내용이 당시 지역감정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컨데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일제시기 기독교계 지식인들의 지역갈등 구도는 서북지방과 기호지방을 중심으로하
1. 갈등의 개념
사회과학계에서 사회갈등이란 용어가 사용된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사회갈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합의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은 사회갈등에 대한 연구가 보다 과학적인 방향을 향해서 진행되어가고 있는 상태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갈등의 존재 차
대한 조사결과를 보면 농촌에서는 1년에 한번이라도 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가정이 많았다. 즉 대중 외식의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외식문화는 바로 도시인들의 문화인 것이다. 이러한 것에서 본다면 예전의 전통사회의 식사형태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고 해서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여성교육관이 오늘날에 와서도 적지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의식이 그러하고, 여성 스스로도 교육을 단지 결혼의 준비교육으로서 간주하는 경향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이 시점에서
그의 신앙은 원죄의식 속에 깊숙이 내려져 있다. 윤치호는 먼저 자신 속에서 이원제를 체험하였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끊임없는 영적갈등 속에서 진지한 도덕적 자성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그의 일기 전편을 통해 현장감 있게 표현되고 있으며 그의 윤리의식은 철저하게 내향적인 자성의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