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 등에서 볼 수 있듯이 1940년경까지 독자적으로 성숙했는데, 서로 고립
한 현실적 물체와 논리를 뒤집음으로써 재미있게 서로 결합시키고, 명쾌하게 묘사하여 매혹적인 환상의 세
계를 그렸다. 이러한 평이하고 깔끔한 작품들은 밤의 신비나 괴기를 즐기는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서 주목
되었다.
추상표현주의, 누보레알리즘 등에 영향을 끼쳤으며, 오브제의 미학인 아쌍블라주, 정크아트, 개념미술, 팝아트,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까지도 새로운 미학적 개념들과 형식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에 현대 미술에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마르셀뒤샹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상은 우리들이 익히 아는 것으로서 대중들이 즐겨하고 쉽게 친숙해지는 특성이 내재되어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기호(sign)와 소비주의 그리고 매스컴과 쉽사리 동일시되는 전후(戰後) 예술운동의 초기 이미지이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의 하나가 광고 형식을 취했
표현주의운동은 짧았지만 그 영향은 지대해서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는 수틴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했지만 독일에서는 더욱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이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외에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예술인 입체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는 작품을 중심으로 아방가르드에
추상창조운동'에 참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시 취리히에 가서 살았는데 1943년 그곳에서 아내가 죽었다. 스위스에 있는 동안 처음으로 '파피에 프루아세'('구겨진 종이들')를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 뒤 뫼동으로 돌아와 거기서 추상적 형태와 색채를 사용한 실험을 계속했으며 시도 썼다. 마르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