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개조와 유산의 정리 위에 새 문화를 섭취하는 과정이라기보다 오로지 구미 문화의 일반적인 이식과 모방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조선 신문화 건설의 유일한 길이며 낡은 문화의 구축(驅逐)하는 최대의 방법이었음은 사실이다. (…)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장 주목해둘 점 하나는
한국역사대사전》을 편찬하던 도중 뇌일혈로 죽었다.
2. 시대 배경
한국 사회는 1910년 일본의 강점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그 이전에 추구해 오던 개화계몽운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된다.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폐지하고 한국에 대한 경제적 수탈정책과 한국민족에 대한 차별정
계몽, 교도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 시작하였고, 1908년 근대화의 역군인 소년을 개화, 계몽하여 민족사에 새 국면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종합잡지 『소년 少年』을 창간하고, 창간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어 한국근대시사에서 최초로 신체시를 선보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형성된 7?5저를 기본으로 한 새로운 노래로서의 시가형태.
㉢ 신체시(新體詩)
ⓐ 일본의 新詩를 모방하여 실험한 형태.
ⓑ 개화가사와 창가의 형식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함.
ⓒ 근대 자유시의 토대가 되었다고 높게 평가됨.
ⓓ 최남선의 <海에게서 소년에게>(<소년>.1908): 최초의 신체시
근대화에 대한 지향이 강한 시대에 당대의 선각자나 지식인 엘리트들에 의해 창작 발표되었다
≪ … 중 략 … ≫
Ⅱ. 현대시의 양상
1930년대에 이르러 한국 현대시는 다양한 성격과 양식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는다. 이 시기에는 전대의 민족주의 성향의 시문학이 쇠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