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기는 양부 최광현의 중국 고서첩 수집 취미(지리적으로 개성이 중국과 가까웠기 때문에 고서를 얻기 쉬웠을 것이다.) 덕분에 더 많은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 중역(中譯)된 서양 서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그는 기존의 학문적 성향과 다른 ‘기학’을 탄생시
대한 깨달음이 범주이다.
-사물운화 : 개별 사물들이 범주이다. 가장 말단이다
-일신운화 : 사람의 한 몸이 범주이다.
-인신운화 : 전체 사람들의 몸으로 이뤄지는 작용들이 범주이다
-통민운화 : 전체 인민이 범주이다.(통치의 대상을 지시하는 성격이 있다)
-만민운화 : 인류 전체가 범주이다.
-일통
최한기(崔漢綺), 김정호(金正浩), 최성환(崔瑆煥)등의 중인과의 교우관계가 각별했으며, 서유구(徐有榘)·유비(有棐)형제와도 교류가 있었다.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와 통상개방론을 주장한 인물로, 조선의 개화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외국과의 대등한
학문을 위한 삶 그 자체였다. 그가 교유한 학자로는 이규경, 김정호, 정기원 등이 알려져 있다.
혜강은 1825년(순조25) 23세 때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그 당시에 제출된 그의 시권이 현존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청년시절 그의 경전에 대한 이해수준과 경향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183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