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강사와 저술가로서 점점 큰 명성을 얻게 되는 시절이다. 첫 강의는 수학과 물리학에 관한 것이었고, 과학발전에 대한 관심을 결코 있지 않았다. 관심의 수준이 아마추어 이상이었다는 것은 이때부터 몇 년동안 인종, 바람의 본질, 지진의 원인, 전체에 대한 일반이론 등을 다룬 과학적
철학운동과 문화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캇시러 Cassirer 와 리케르트 Rickert 로 대표되는 <신(新)칸트학파> 철학자들은, 현실이 사고의 산물이라고 확신하였으며, 정신활동 과정과 문화과정을 그런 입장에서 집중 연구하였다. 또 함부르크의 대은행가 바르부르크(Warburg) 가문의 자금 지원과 그 가문
1. 근대철학의 시대적 배경
근대로 접어들면서 중세의 국가와 교회의 정치적 역학관계 및 권위주의적 종교가 많은 모순을 야기했고, 사회적으로는 그동안 누적되어온 불만이 그것에 대한 반기를 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모든 새로운 사상들이 그러하듯 근대철학은 결국 중세에 대한 반발로부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 시대의 계몽적인 시민육성책의 혜택도 받을 수 있어 지리적 ·역사적 조건이 그의 철학으로 하여금 독일적 특수성을 떠나 참다운 ‘세계시민적’인 철학이 되게 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는 당시의 신사상이었던 뉴턴역학에 특히 관심을 두었다. 이 방면에 대한 연구는 대학 졸업
칸트의 생애
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에 태어나서 1804년에 죽었다. 그는 18세기 철학의 위대한 거물이다. 물론 논의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철학 전반에 걸쳐 위대한 거물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거의 평범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그는 퀜스베르그에서 태어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