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개혁주의 신학의 뿌리가 되는 [기독교 강요] 제4권에서 성경에 기초한 교회론을 전개한다.
1.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교회론과 직제론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장로교 정치의 필요성과 성경적 기초에 입각한 직제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러나 제네바에서 목회 사역을 하는 동안
칼빈이 그 서문을 써냈는데 이것이 칼빈의 첫 출판물이었다. 이 대학에서 칼빈은 법학 외에 이 학교로 초빙되어 온 볼라르로부터 계속 헬라어를 배웠다. 1532년 그는 오를레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법학 지식은 나중에 자신의 제네바에서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1531년 5월말에 교
칼빈의 정신을 이어받은 개혁신앙을 이어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사회와 역사와 문화를 변혁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프로테스탄트를 고무시킨 인물인 루터가 아니고 칼빈이었고 개혁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사실상 이 운동의 주역이었다. 스코틀란드와 영국의 개혁주의 공동체는 새
칼빈만의 운동은 아니었다. 종교개혁 이전부터 교황의 무오설을 비롯하여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탈선된 교리에 대하여 누누이 지적해오던 선구자들의 터 위에서 계속된 것이다.
이들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위크, 후쓰를 위시한 신학적 도전은 중세교회의 기초에 균열을 가져오게
제3부 근세시대(The Moden Period)
종교개혁(The Reformation)으로부터 현재까지
제21장 루터(Luter)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루터가 공헌한 것은 복음주의적 루터 신학의 전체적인 성장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저작물들은 종교개혁 이후의 전 시대를 통하여 신학 사상과 말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