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 결혼 전에 아이를 밴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것 등을 안 사실로 죄의식이 심화되었고, 인생을 보는 눈과 그리스도교를 보는 눈에 근본적인 변혁이 생겼다. 한편, 37년 당시 14세의 소녀 레기네 올센을 알게 되어 약혼까지 하였으나, 애정의 상극과 내면의 죄의식 때문에 41년 가을에 약혼을 파
실존을 강조하게 된 동기
키에르케고르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는 헤겔철학의 전성기였다. 이성을 중시하는 헤겔의 객관적 진리는 키에르케고르의 주관적 고뇌와 실존문제에 관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즉, 인간의 본질(本質)을 탐구하기 보다는 인간은 어떠한가 내가 나
자기 반성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다.
키에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상인의 8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 때 아버지의 나이는 57세, 어머니는 43세였다. 아버지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고 독실한 기
Agnostismus(불가지론)과 무신론,논리적 실증주의,비판이론(종교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등이 만연하게 되어 참된 종교의 본질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현대인들은 가치와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고 대중사회의 조류에 휩쓸려 참된 자아와 참된 실존의 의미에 대한 문제들을 잊어버린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