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치체의 규모와 조직을 복원해볼 수 있다.
◆ 따라서, 계층의 분화, 복합사회의 형성, 그리고 초보적인 중앙집권이 실현된 초기국가의 형성이 고분의 발생과 가지는 연관성은 무시할 수 없다.
(1) 낙동강 이동지역 고총군(5세기 집중) 분포의 정형성 - 초기국가 신라의 간접지배 방식
★ 고분군
본 발표에서는 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고고학적 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함.
Ⅰ. 고대국가와 연맹체를 구분하는 기준
문헌사적인 측면:
율령반포, 불교수용, 부자상속, 정복전쟁 등
고고사적인 측면:
통일된 유물양식(묘제, 토기)
*영남지역의 특수성: 철기문화의 흐름
고배(高杯), 소형토기 등은 고식 도질토기 문화의 2단계 전형적인 유물로 판정되고 있다. 화명동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들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➄ 당감동 고분군
부산진구 당감3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밀집분묘군으로 반출된 유물로 보아 대략 5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 1
가야 지배층의 유일한 고분군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당시만 해도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할 만한 유물이 거의 없었는데, 복천동 고분군에서 1차 발굴 때부터 쏟아져 나온 철제 갑쥬류.토기류.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들은 일본 것보다 시기가 빠르고 뛰어나서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할 수 있
지역의 소국들이 경제적 교환이나 적대적인 세력에 대한 공동방어 등의 목적 하에서 보다 강한 결속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마한연맹체 내에서 형성된 지역연맹체가 어느정도였는지는 분명히 하기 어려우나 위례의 백제국 세력ㆍ稷山(직산)의 목지국 세력ㆍ익산의 건마국 세력ㆍ영산강 유역의 新
가야에서는 수많은 고분들이 발굴조사 되었으며, 이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유적과 유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풍습을 유추해보면서 그들의 문화를 알아갈 수 있는데, 고분은 특히 유적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안겨준다. 그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고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왔고, 또
가야연맹체, 또는 연맹왕국"가야"로 파악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가야의 영역을 동은 黃山江(낙동강 하류), 西南은 滄海(남해안), 西北은 地理山(智異山), 東北은 가야산의 남쪽이라고 했는데, 이는 대체로 낙동강 서안의 영남지역으로 멸망 직전의 사정이며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조사 성과
가야와 백제 세력권의 경계는 아막산성과 교룡산성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또 고고학 유적분포로 6세기초 가야와 백제 사이에는 소백산맥과 지리산이 자연적으로 경계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듯 백제가 남부지역을 평정하면서 가야를 위협하자 서쪽지방 세력을 확보하려는 대가야와 자연적으로 부
가야에서의 음양 사상은 시조 탄생설화에만 작용한 것으로 볼수 없다. 일상생활이다 세의에서도 적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천신이나 지신 또는 조상신에게 드리는 제사때 사용되는 세기에도 이러한 음양사상이 내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하면 기대와 장경호의 모양을 음양오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