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는 군주의 통치 도구에서 인민의 손으로 옮겨오는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혁명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매체로 인식되면서 혁명 정부는 교육정책의 정립을 통해 지방어를 근절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였다. 자코뱅 통치기에는 이른바 ‘언어적 자코뱅주의’ 송기
정책이 바로 다언어주의라고 결론을 내렸다. 즉, 오직 다언어주의 원칙만이 문화차원의 지방주의를 실천하는 동시에 영어의 범람과 오염에서 프랑스어를 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 언어교육 방침이 세워졌는데, 한편으로는 중등교육에서 12개의 외국어 선택을 부여해 영어
프랑스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3백만을 넘지 않았고 대부분은 지방어를 말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혁명정부는 국민국가의 건설을 위해 불어를 명실상부한국어로 정립하려는 전대미문의 언어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불어교육(불어를 불어로 가르치기)을 통해 지
프랑스어는 국제화되었고 이에 따라 국제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가 형성되었다. 프랑스인의 프랑스어에 관한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켈트어 계통의 브레통어, 로망스어 계열의 오크어, 게르만어 계열의 알자스어 등의 각 지역어가 있으나, 프랑스의 강력한 1언어정책으로 인하
언어정책에서도 민족자결권의 원칙을 지키려 하였다. 그래서 볼셰비키 혁명이 끝난 10년 동안에 비 러시아 소수민족들에게 민족어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정책에 의해 민족어는 학교 교육의 언어로 사용되었고 공화국이나 자치주를 갖고 있는 민족들의 공용어로 지위가 격상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