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다양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이 텍스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누벨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파도) 역시 그러한 획일화와 기존의 관습에 대한 주요한 저항의 하나였고, 그 시대 영화만이 아니라 많은 청년문화에 의미 있고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영화 작업들을 도우며 그 자신도 몇편의 단편을 만들었다.
자신이 일했던 스위스 댐 공사장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콘크리트 작전>(54), <모든 청년의 이름은 파트릭>(57), 편집 연습용 영화 <물 이야기>(58)가 있다(<물 이야기>는 프랑스와 트뤼포가 만들다가 포기하고 고다르에게 넘겨준 영화이다).
영화
(1) 누벨바그 이전 프랑스영화의 특성
1) 무성영화의 시대
누벨바그 시기 이전부터 프랑스영화는 무성영화의 시기이다. 일반적으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탄생한 1890년대 중반부터 영상과 음향을 일치시킨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등장한 1927년에 이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Ⅰ. 영화의 영화사적 의미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의 영화사적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 프랑스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누벨바그 사조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새로운 물결은 기존의 익숙한 것에 대한 도전과 대항으로부터 시작된다. 비평가들은 프랑스누벨바그를 새로
영화사의 다양한 사조 중 전세계적으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되는 사조로서, 약 반세기동안 영화를 지배해온 관습들과 규범들에 전면적인 반기를 들며 등장함
• 문화사적 의의와 세계사적 의의 → 프랑스어권 문화의 심층적 이해
누벨바그의 전개|
1957년경부터 영화 비평을 해오던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