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연구가들처럼 루터가 단지 “가톨릭 교회의 변절자”요 “사악한 자”였기에? 요즘 가톨릭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것은 이제 시대에 어긋나는 말이다. 오히려 루터에게서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그것은 ‘바다’와도 같은 그의 풍성한 신학과 ‘삶
교회는 분격하여 1520년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반항하여 루터는 대학의 열광적인 학생들 앞에서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새로이 왕위를 오른 신성로마황제 찰스(Charles) 5세는 루터를 설득하기 위하여 소환하였는데,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결같고 인간의
교회는 분격하여 1520년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를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반항하여 루터는 대학의 열광적인 학생들 앞에서 교황의 교서를 불태워 버렸다. 이듬해 새로이 왕위를 오른 신성로마황제 카알(Charles) 5세는 루터를 설득하기 위하여 소환하였는데,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결같고 인간의
교회재산을 관리하게 됨에 따라서 도시 개혁자등에게 개혁의 소지를 주었다. 계속해서 증가하는 중세 후기 도시들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중요성과 연관하여 볼 때, 황제, 지역 영주 그리고 제국도시들 사이에 나뉘어져 있는 독일의 권력 분할 구도는 개혁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개혁은 진부한 그
루터를 ‘적그리스도’라고 몰아세우고 파문을 내리는 경고장을 보냈다. 이에 루터는 군중이 모인 앞에서 교황의 경고문을 불태워 버렸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회의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공인되자, 가톨릭이 아닌 루터교는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해 유럽 전역에 종교개혁의 돌풍을 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