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동부지역을 일명 北間島라하는데 일반적으로 간도라 함은 이 북간도를 지칭한다. (任桂淳, <백두산정계비와 조․청간의 乙酉․丁亥국경회담>(《한국의 북방영토》, 백산학회 편, 1998), p12~13.
지역의 개척, 이로 인해 벌어진 조․청간 국경분쟁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정계비 설치의 의미와
설립하여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⑤ 동천왕 때 위와 국경을 접하게 되어 서안평을 공격하다가 오히려 위장 관구검의 침입으로 국내성이 한 때 함락되었다.
13.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연방제안이 공통점이 있다고 서로 인정하여 합의하게 된 회담은?
① 7․4남북공동성명 ② 6․23선
간도(間島)라 불렀다. 이것이 간도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그 후 무산, 온성 사이의 주민이 도강하여 개간하는 자가 점차 급증하여 백두산 동쪽 기슭의 비옥한 토지는 개간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어 이를 모두 일컬어 간도(間島)라 불렀다. 따라서 두만강과 압록강 대안지역의 개간지역을 자연스레 간도
간도는 두만강 이북 지방의 만주 가운데 특히 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일컫는다. 간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주로 현재의 영토를 중심으로 한다. 현재 중국의 영토에 귀속되어있는 영토는 중국의 영토라는 인식이다. 또한, 중국 학계는 조선인의 간도 이주를 청나라가 봉금정책을 시행한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