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청은 계속적인 국경분쟁을 겪어야 했다.
여기서는 백두산정계비 설치 과정과 간도 間島는 다음과 같이 구분되고 있다. 압록강대안지방을 막연히 西間島라 하고 두만강대안을 東間島라 한다. 동간도는 다시 두개로 구분하여 白頭山과 松花江상류지방을 東間島西部라 하고, 두만강대안지역을
만주 혹은 간도에 대한 애착은 쉽게 버리지도 못하고, 일정부분 현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본고에서는 대외관계사의 측면에서 이와 관련하여 조선후기 북변외교에 중요한 화두들 중 대표적인 '나선정벌'과 '백두산정계비'에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이다. 이곳은 1909년 간도협약 체결했을 때 한·청인의 잡거구역으로 규정한 곳이다. 주로 간도라 하면 우리가 흔히 '연변'이라고 부르는 중국 길림성 동쪽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 해당하는 지역인 북간도(동간도)를 가리킨다. 즉, 간도는 노야령 산맥(老爺嶺山脈)과 흑산령 산맥(黑
대한 견제를 위해 청은 봉금지대를 풀었고, 이 과정에서 압록과 두만강 인근에서 조선인들이 오랫동안 거주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⑤ 이때부터 청, 대한제국(조선)간의 지리한 영토분쟁이 일어나는데 숙종대의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조선은 토문강이 경계라고 주장.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