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공민왕의 개혁을 두고 반원정책이라 하기도 하고 개혁정책이라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둘 사이의 경계점이 어디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백여 년간 지속된 원과의 관계 속에서 정립된 많은 것들을 다 뜯어고치는 상황에서 모든 정책은 반원이기도 하고 개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공
공민왕의 반원정책 추진과 개혁정책의 미숙 그리고 권문세족의 득세와 토지겸병으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혼란과 왜구에 대한 통제력 약화를 들 수 있다
② 일본의 국내적요인
남북조의 쟁란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과 중앙통치권의 해이 그리고 국내상업의 진전 무력적상인 해적군의 해외활
한국사관’을 흔히 ‘식민사관’이라고들 부른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용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식민사관’이라 하면 우선 식민을 하는 쪽이 주체인지, 식민을 당하는 쪽이 주체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관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범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하나의 역사적 현상인 식민
Ⅰ.서론
14C 대외적 상황을 보면 북송과 남송시기에 서북방의 서하와 북방의 요ㆍ금ㆍ원은 이민족이 건립해 중국의 일부 혹은 번부를 지배했다. 요는 최초의 정복왕조로서 후대의 정복 왕조에 많은 영향을 준다. 금나라가 쇠퇴해가던 13세기 초엽에 이르러 동아시아는 몽고평원에 부족 단위로 유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