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지소유론의 고려사회론 박종기, 「고려사회성격론」,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2002, 126-128면
1960년대 토지소유론의 관점에서는 토지사유의 시작 시기에 따라 고려사회의 성격 이해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토지소유론은 지주와 전호를 그 사회의 기본적인 생산관
-박용운『고려시대사』(1985)→‘문벌귀족사회’
①고려의 지배세력은 음서제와 공음전을 정치경제적 기반으로 하여 왕실이나 유력가문과 폐쇄적 통혼권을 형성하여 가문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②과거제는 단순히 개인의 인품이나 실력에 입각한 인재선발의 목적보다 더 넓은 사회계 층을
고려왕조는 귀족제사회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중략>
따라서 귀족은 양민(良民)보다는 상위의 특권신분층(特權身分層)이라는 것과 이러한 신분은 특권적 가계(家系)에서 출생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즉 ‘혈연에 의해 특권적 신분을 세습하고 이러한 특권적
사회발전론에 입각한 중심인물의 설정은 신민, 소년, 청년 등을 거쳐서 1920년에 들어서면 중추계급의 설정으로 나타난다. 중추계급론은 역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서 정형화 된다. 이광수의 사관은 엘리트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중추계급의 일반적 가치부여와 함께 식민지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