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 - 한국의 미술가』, (주) 사회평론, 2006, p.95
고 말했을 정도로 공재가 조선후기 화단에 일으킨 변화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공재는 자신의 화풍에 남종화법을 수용함으로써 조선후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조선후기인 1700년대 초에는 바깥의
남종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절파풍의
표현 혼재의 문제
-명문가의 후손. 하지만 몇 번의 큰 사건들로
인하여 삶에 많은 굴곡이 있었다.
*심사정의 화풍을 이루는 두 가지 커다란 줄기
-조선 중기에 유행했던 절파화풍과
조선후기에 전래된 남종화풍이다.
*초기(1720~1750년경)
-남
발전 및 유행한 화풍이다. 따라서 기존 풍조와 다르게 관념적이면서도 사실주의에 입각한 한국적인 화풍을 만들어 냈으며 진경산수의 모태라 불리 울 정도로 조선 중후기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남종화법의발전
1) 초기-윤두서
·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1715)
공재 윤두서는 1668년
남종화
문인화가들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남종문인화라고도 하며, 문인화라고도 부른다. 인격이 높고 학문이 깊은 문인들이 수묵과 엷은 채색을 써서 내면의 세계를 표출한 그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에 유입되어 후기의 심사정, 강세황, 이인상을 거쳐 말기의 김정희파에 의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