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및 유행한 화풍이다. 따라서 기존 풍조와 다르게 관념적이면서도 사실주의에 입각한 한국적인 화풍을 만들어 냈으며 진경산수의 모태라 불리 울 정도로 조선 중후기의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남종화법의발전
1) 초기-윤두서
·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1715)
공재 윤두서는 1668년
유행으로 필치가 거칠어서 정교하거나 치밀하지 못하다는 문제점을 느끼게 된다. 당시 중국에서는 문인화가 절파풍이 훼손한 중국 산수화의 극본정신을 회복한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었는데 이러한 흐름에 따라 조선에서도 절파를 비판하고 문인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
남종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절파풍의
표현 혼재의 문제
-명문가의 후손. 하지만 몇 번의 큰 사건들로
인하여 삶에 많은 굴곡이 있었다.
*심사정의 화풍을 이루는 두 가지 커다란 줄기
-조선 중기에 유행했던 절파화풍과
조선후기에 전래된 남종화풍이다.
*초기(1720~1750년경)
-남
조선 초기기를 비롯해 중기의 도화서 화원들의 미법 산수가 전해지며, 후기에는 남종화가 유행하면서 문인화가들에 의해 널리 채택되었다.
➄ 남종화
문인화가들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남종문인화라고도 하며, 문인화라고도 부른다. 인격이 높고 학문이 깊은 문인들이 수묵과 엷은 채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