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은 오랜 음악 경륜과 문화와 전통을 바라보는 유연하고 참신한 사고를 겸비한 인물이었고,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지만 핵심적인 생각 몇 가지로 세종 시대의 음악정책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음악문화의 조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소박한 성품의 청백리 맹사성으로서 뿐만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를 처음으로 창안해낸 사실들이다. 그의 음악적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몇몇 항목들을 개괄해 봄으로써 실로 세종대왕이 한국음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다.
주지하다시피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왕조와
Ⅰ. 맹사성(고불맹사성)의 약력
조선 세종대왕때 명재상이자 음악가인 맹사성(孟思誠, 1360~1438)선생은 1360년(고려 공민왕 9년) 지금의 개성 근교 농촌에서 아버지 맹희도(孟希道)와 어머니 홍양조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에서 10세 사이에 한산을 거쳐 지금의 아산시 배방면 중리(행단)로 이사를 하게
조선 전기(근세)의 음악
* 시대 구별 : 조선시대의 음악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하여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조 선전기의 음악은 1392년부터 1592년까지의 약 200년간으로 본다.
* 시대 배경 : 조선시대는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구축되 었
세계음악사 속의 한국음악한국의 국악과 양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관련성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에 대한 해명은 이 글의 범위를 크게 벗어날 것이다. 하지만 짧게 말해본다면 이런 것들이다. 많은 양악가의 작품이 국악적인 경우가 많고, 많은 국악작곡가의 작품이 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