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고불맹사성)의 강호사시가
그의 풍류적이고 여유스런 삶의 모습은 단순히 생활의 한 측면에 국한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의 문학세계에도 잘 투영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최초의 연시조(連時調)로 알려진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를 남겼는데 그 시상(詩想)과 표현이 담박(淡泊)
맹사성의 벼슬생활과도 관련하여 이해 할 수가 있다.
* 중장은 가장 유유자적한 삶을 표현하는 단어로 선정하여 대필하고 있으며, 금린어라는 단어는 쏘가리 궐(鱖)의 한자로 대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 하사(夏詞)
강호에 여름이 드니 초당(草堂)에 일이 없다
유신(有信)한 강파(江波)는 보
맹사성은 오랜 음악 경륜과 문화와 전통을 바라보는 유연하고 참신한 사고를 겸비한 인물이었고,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지만 핵심적인 생각 몇 가지로 세종 시대의 음악정책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음악문화의 조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소박한 성품의 청백리맹사성으로서 뿐만
성과가 여과과정을 거쳐서 조선 전기에 광범위하게 정착될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지배질서가 확립되자 격동은 끝나고 안정이 찾아왔다. 안정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서 새로운 모색을 제약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나타났다. 어찌 생각하면 조선전기문학은 고려후기문학에 대한 배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강호시조와 일본의 하이쿠시를 비교해보고, 문학 교육적 측면에서 비교문학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비교문학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 비교문학이란
비교문학은 유사성, 동류성, 영향 관계들의 탐색을 통해 문학을 표현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