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나 그들 간에 있었던 수많은 종교적, 문화적 교류를 교과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교과서에서는 수나라와 고구려 사이 전쟁의 승리자 을지문덕 등은 우리민족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구한 한국사의 영웅으로 만들면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묵묵
민족해방투쟁기였으며, 1945년 이후에는 민족 분단시대였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목표를 추출해 본다면, 그것은 바로 근대 민족국가의 건설이다. 제1기는 근대국가를 수립하려다 좌절된 시기, 제2기는 주권을 상실한 시기, 제3기는 통일을 지향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한 민족은 아직까지
한국이 역사적으로 한강이북의 중국지역을 침범해왔다고 부연한다. 또한 “中韓相關姓氏族源考論”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상당수 성씨 기원이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덧붙여 “中國東北古民族發展史”에서는 우리민족의 한 뿌리인 예맥족을 중국민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箕子與箕子朝鮮硏究”
우리민족의 실력부족의 탓으로 상당히 돌렸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를 둘러싸고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여전히 쟁점이 형성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일제하의 민족주의 운동 진영이 1920년대 이후 펼쳐나갔던 ‘문화운동’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엇인가
아득한 옛날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의 인류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짐승을 사냥하거나 과일 등을 따기 위해 서로 협동하고 잡은 짐승은 공평하게 분배하였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는 왕도 없었고 신하도 없었다. 서로가 왕이고 신하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