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硏究史 정리
경기체가는 고려 고종 때의 「한림별곡」을 효시로 조선조 말인 1860년 민규의 「충효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던 국문학의 시가 장르다. 경기체가는 26수에 지나지 않아 수적으로는 비록 적으나, 그것의 문학사적 가치는 우리 시가사에서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영역이
사대부들은 문인의 사회적 위치를 염두하여 한시를 창작하였다. 이는 자신들의 성장 배경이며 경제적 기반인 농촌에 대한 현실 감각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의 회화적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보다는 자연에 냉담한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 특히 농민에게 강한 흥미를 나타낼 따름이다.
별곡」은 악장계 경기체가 작품들과는 연행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형식이 기본형에서 약간씩 벗어남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경기체가라는 장르적 틀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연행 장소가 사적인 연향의 자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동별곡」에서는 후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