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절과 사성의 발견으로 시의 운율을 더욱 더 중시하게 됨.
압운 가능 여부를 따지기 시작하고 동운자를 모아놓은 운서가 필요하게 됨.
한시(漢詩)를 지을 때, 서로 압운(押韻)을 할 수 있는 한자(漢字)들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한자들을 분류해서 엮은 일종의 발음자전(發音字典).
-모든 한자들을
한자음에서는 전자는 모두 /ㄱ/으로, 후자는 /ㅎ/으로 흡수되었다. 그런데 속음 한자 중에는 양자가 상호 교체된 자음이 적지 않다. 그 원인은 첫째 아·후음은 조음위치가 근접하여 음성적 유사성이 강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Karlgren이 중고한음의 [k, k'/ x, ɤ]를 설근음(gutturals)에 포함한 것도 이 때문
반절)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고 四聲의 발견도 이루어지면서 일련의 음운에 대한 인식이 진전되어, 운서가 탄생할 조건을 갖춘다.
최초의 운서는 삼국시대 魏나라의 리떵(李登)이 지은 『聲類(성류)』라고 한다. 그와 항상 병칭되는 晉人 뤼징(呂靜)의 『韻集(운집)』도 있었다. 또 절운 이전의 운
운서의 반절을 분석한 것이었다. 반절상자는 성모를 나타내고, 반절하자는 운모와 성조를 나타내므로, 등운도는 각 반절의 ‘성(聲) 운(韻) 조(調)’를 분석하여 음절표를 만들고, 그 반절에 해당되는 글자음을 도표에 나타내었다. 그러나 고대에는 음성기호가 없었으므로 한자로 이를 표시하여서 현대
Ⅰ. 개요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어 비로소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표기 할 수 있게 되었다. 훈민정음의 창제가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마디결과 한글문화 부림 그리고 집현전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제작 얼개 따위를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