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의식에 기초한 운동으로 이해한다면 사회주의도 무리 없이 민족주의의 범주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반일의식은 강렬하게 존재하였고 많의 사회주의자들은 물론 그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에 있어 민족주의자들과 차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반일항쟁을 통하여 독립된 정부를
항일 저항의식을 보여주기 위한 곳으로 민족저항실, 형무소 역사실, 옥중 생활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곳은 서대문 형무소가 설립된 역사적 배경과 우리 민족의 항일 저항사를 시대적 사건별로 전시하고 있다. 이 곳에서 우리 조원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발표하지 못했으므로 강경애의 문학은 곧 간도문학이었던 셈이다. 이 시기에 강경애는 또 약간의 시와 수필도 발표했다.
③ 강경애의 삶과 당시 ‘간도’라는 지역이 만나 만들어 낸 작가의식
강경애의 삶과 작품세계는 식민지 현실, 그리고 좁게는 간도 정세의 변화와 긴밀한 연관관계에 있다.
그에게 큰 불행이었지만, 그 결과 그는 항일투쟁기간 중 일제의 회유공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같은 경험과 환경을 가지고 김일성은 이후 만주지역에서 조선인 및 중국인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된 동북항일연군의 한 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의식이었다. 단편소설「벼」에서 민족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이 같은 맥락이다.
안수길의 작품의 가치는 이 점에 있다. 농민의 땅에 대한 애착이 순응주의에 빠지지 않고 이 땅을 꼭 지켜야 한다는, 이른바 ‘민족의 얼’과 결부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는 이를 통해 자질구레한 뿌리 드리우기는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