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죄의식으로 얼룩지게 만든 시기이다. 송지윤, 위의 논문, p. 2.
이러한 80년대의 암울한 현실에서 해체시는 갈등과 혼란으로 뒤엉킨 현실을 고발하며, 박남철, 황지우, 이윤택은 해체시의 1세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박남철은 다음에 제시된 평론에서 해체시의 지향성을 밝히고 있다.
시의 일반 문법을 거절함으로써 낯선 시적 영혼을 열어간 황지우의 시세계를 이교도의 반란이며 하나의 ‘망명정부’라고 비유하고 있다. 즉, <우리가 황지우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의 굴곡과 음영, 한국 현대사에 얼룩진 역사의 피고름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며, 어떻게 닫힌 현재를 역사의
Ⅰ. 시작하며 - 시인 약력
황지우 (본명 : 황재우)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1968년 광주일고에 입학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문학 활동 시작
1973년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 강제 입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0년 중앙일보
시지 않은 1952년 사형제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즉, 솔섬은 그의 선조들이 살아온 전남 완도군 군외면 고마리 고마도 앞바다에 떠 있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또한 독재의 억압 속에 짓눌린 80년대의 시대 상황은 황지우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하는데 바탕이 되었다. 억압적 상황에 맞서 자유로운 소통을
시기가 80년대였다.
이에 청년 시인들은 기성 세대들에 의해 축조된 세상이 진부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청년 시인들은 당대의 역사적 현실과 문학적 관습에 대한 전복을 꿈꾸기 시작했다. 즉 기성 시인들의 세계는 진부한 관습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들 중의 일부였던 황지우는 “시를 추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