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유교가 기본적인 학문의 주류가 된 유학이 한국과 중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부작용도 많아 현대 유학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학문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어떤 사람은 종조인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더구나 주자학은
하여 고르지 않으며, 글자획을 잘 못 새겨 끊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나타난다. 새기는 자의 미숙으로 말미암아 글자체가 일그러질 수도 있다. 중종임신본 『삼국유사』의 刻板을 서체와 刻法에 따라 분류하려는 시도는 중요하다. 원각판과 번각판을 가리는 작업 역시 우선적으로 시도되어야한다.
庵 趙光祖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시도 되는 至治主義運動의 계열로 분화되어 전개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먼저 한국성리학에서 나타나는 수양론의 계열을 알아보기로 하자. 중국 성리학을 수용하여 한국적으로 정착시킨 목은은 <天人無間>의 인간관을 정착시킴으로써, 天과 하나 되기 위한
Ⅰ. 개요
갈암은 성리학에 있어서는 철저한 주자학 정통주의 -엄밀히 말하자면 퇴계학의 유일적 정통주의- 의 재흥을 모색하였다. 경세론에 있어서는 당시 성리학자의 비경세유용적인 학문경향을 비판하여 경세적 측면이 강했던 선진유학의 정신을 재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의 성리학은 순
(2) 안정복의 역사인식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주자학을 신봉하던 유가 계에 새로운 변화와 반성이 일어나가 시작했다. 이것은 조선후기 국내외의 여러 사정, 즉 임진왜란으로 인한 국가재정의 파탄과 국민생활의 피폐,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관리들의 고식적인 대응책에 대한 반발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