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942년 내외정세의 변화와 주체적인 인식에 근거하여 민족혁명당․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무정부주의자총연맹의 3단체가 임정에 참여하였다. 민혁당은 내외의 조건 변화를 계기로 임정을 개조하여 민족해방운동의 최고 영도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임정 개조의 논리하에 임정에 참여하였다
2. 남북연석회의
트루먼 독트린과 같은 국제 냉전체제의 분위기 속에 1947년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미국측에 의해 결렬되고 미국측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 소총에 이관되고 48년 2월 메논을 위원장으로 하는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남한만의 단독 선거 실시를 보고함에 따라 한반도의 분단은 눈앞에 다
암살로 좌우합작위원회 사실상 해체
유엔 소총회의 남한단독정부수립 움직임에 김구와 중도세력인 김규식 등이 남북협상 계획
김구와 김규식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 참여, 그 후 김두봉, 김일성과의 4자회담에서 남북통일정부수립을 약속
남한의 단독선거 이후 북한의 약속 파기로 실패
남북한에서 외국군을 철수시키고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로 임시정부를 만든 후 총선거를 실시하여 완전한 독립국가를 만드는 일을 북쪽의 정치지도자들과 협상한다는 데 있었다.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3천만 동포에게 호소하는 격문‘을 채택하고 미.소 양군의 동시철병을 요구하
남북연석회의와 남한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은 소중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역사적 사건’은 일회성에서 벗어나 반복될 수 없다. 또한 분단과 통일의 갈림길에서 핵심적 변수인 남한․북한․미국의 삼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