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관념론과 헤겔의 총체성 철학을 전면적으로 불신하고 거부한다. 이를테면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것에 대한 거부가 개별적이고 개인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라스는 독일관념론 (Der deutsche Idealismus)을 일체의 총체화하는 사유방식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문학적, 정치적 활동의
관적 결말이 아니다. 오히려 담즙같은 멜랑콜리가 아리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이빨 치료는 실패로 끝나고, 남은 것은 새로운 통증뿐이다.
이빨 치료의 실패, 그러니까 치과의사의 실패는 무엇을 뜻하는가. 거기에는 자연과학적 진보와 사회보장의 확충에 의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믿는 치과의사
Ⅰ. 귄터 그라스의 역사인식
관념론적 역사파악의 요체를 이루는 것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이성이나 정신 등의 추상적인 힘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을 추구해 나가는 이런 추상적 힘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진보를 나타낸다는 생각이다. 그라스의 역사개념은 역사를
독일의 주류 정치사 중심의 역사를 탈피하여 본격적인 문화사 체계를 정립한 문화사가이다. 여기서는 본격적으로 부르크하르트 문화사관의 특징과 배경, 문화사적 르네상스 개념에 관하여 고찰하기 전에 그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19세기 유럽 그리고 그가 바라본 19세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9주차 콜롬버스의 세 얼굴>
유럽 인종 처음으로 신대륙을 발견하고 “위대한 탐험가”, “개척자”라고 추앙을 받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으로 에스파냐(스페인)의 이사벨 1세의 후원을 받아 항해를 하였다. 그는 “서쪽항해”를 주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