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 것들의 낱낱의 구체성과 가능성을 말살해 버리는 관념론적역사개념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그는 역사를 논리일관한 법칙에 따라 직선적으로 진보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혼돈과 모순, 그리고 우연으로 가득찬 부조리한 과정으로 파악한다. 부조리의 모형인 반복과 순환의 역
재통일이라는 허풍스런 말은 끝장이 났다. 왜냐햐면 제정신을 가지고서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유럽의 중심에 또 다시 권력집중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민족의 비관주의자”로 “독일통일에 대한 악명높은 적대자”로 표현한 그라스는 문화민족, 즉 “민
소설의 삽화 (비유)와 언어의 풍부함도 여기서 나온다”라고 말하는데 이 주장은 그라스의 언어가 유럽 소설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표명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의 관점과 일치한다. 실제로 대표적인 바로크 시대 작가인 라블레는 그의 소설 ꡔ가르강뛰아와 빵따그루엘 Gargantua et Pantagruel+
평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홀트후젠 H. E. Holthusen과 쁠라드 H.
Plard는 양철북을 전형적인 악한소설로 간주한다. 홀트후젠은 양철북을 전통적 형태의 악한소설로의 회귀라는 측면에서 관찰한다. 쁠라드는 풍자적 요소를 언급하고 일련의 서사 기법을 다루면서 그라스에
체념에 빠진다. 그것은 이 운동들이 그 핵심에 있어서는 관념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 과도한 희망에 의지해서 유지되고, 그래서 언제든지 깊은 절망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희망 없이 보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체념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려고 한다면 카뮈가 도움이 될 것이다.” (X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