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나라의 시대상황
송을 건국한 이는 사후에 송 태조(960-976)로 불려진 조광윤이었다. 그는 후주의 유능한 젊은 무장이었는데 959년 후주 군사력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근위군 대장에 임명됨으로서 우세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소년 황제가 갑작스럽게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960년 초에 군대는 조광윤을
송 이후에 이르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보이면서 사상계에서도 유교가 도교나 불교의 세력을 압도하여 다시 그 지배적인 위치를 확립하게되었으며 이후 명청대에 와서도 그 위치는 변함없이 되었다. 특히나 송대 이후의 유교는 이전의 한대의 경학이나 당대의 주소학의 성
불교의 개조인 고타마 붓다가 활약하였던 기원전 5, 4세기 경에 중국은 춘추 전국시대였고 공자나 노자를 비롯한 많은 사상사들이 출현하였던 시대였다.
이 두 개의 단절되었던 문화가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원전 2세기말 중앙아시아를 횡단할 수 있는 동서교통로가 열린 무렵부터였다. 서쪽 로마
송에 끊임없는 위협을 주었으므로, 남송에는 현실주의파인 강화론자와 이상주의파인 주전론자와의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생겼다. 이것도 지식인의 정치적 관심을 높이는 원인이 되었다.
2)불교에서 유교로
육조수당의 7백년간이 중국불교의 황금시대였던 것은 그 시대의 주역이 정치와 문화의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