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강이천이가 관극시에 기록한 18세기 후반기의 산대놀이가 현전하는 양주와 송파의 산대놀이의 전신이라는 주장이 이미 학계의 통설이 된 작금에도 18세기의 이철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였던 이유로 벽사가면이 이철괴탈에서 연잎탈과 눈끔적이탈로 교체된 배경과 동기에 대해 어떠한 해명
1. 역사적 유래와 사회적 배경
(1) 유래
송파산대놀이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때 (1973) 밝힌 유래는, "송파지방의 산대놀이는 약 200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나 중도에 쇠잔하였고 1900년대 초에 다시 송파거주인 이 구파발산에 연희자를 초빙하여 재건하였다." 하였으나, 현재의 기능보유자들의 증언
송파산대놀이 두 가지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산대놀이는 서로 비슷한 구조와 놀이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송파산대놀이가 더 오래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송파산대놀이는 서울의 송파 지역에서 전해 오는 가면극이다. 이것은 경기 지방에서 즐거운 놀이로 이어져 오던 높은 무대
Ⅰ. 개요
산대는 실제 산의 외형을 본떠 만드는 것이 첫째 요건이라 할 수 있으며, 규모가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기암괴석이 첩첩한 산의 모양을 이루고 있어 넓고 트인 무대면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봉사도>의 산대는 겹층 무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산대 앞 마당공간의 무대적 특성과 서로 대
Ⅰ.경기도지역 탈놀이
1. 송파산대놀이
① 놀이의 성립
송파산대놀이는 양주별산대놀이와 함께 서울과 경기도 지방의 탈놀이 중에서 드물게 살아남은 놀이 중의 하나이다. 놀이의 성립에 관계되는 문헌이나 신빙성있는 증언을 찾을 수 없고, 다만 양주의 경우와 같이 조선조 후기에 한양이나 그 주